오늘은 날이 좋아서, 가장 빠른 길을 택하지 않고 시청역까지 걸어 보았다. 2호선 시청역이나, 5호선 서대문역이나 둘 다 다음역이 충정로역인데,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다음 정거장이 충정로인 것이 평소랑 다름없이 퇴근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권장 근무시간 같은 게 있다. 어디까지나 권장이지 필수가 아니지만, 또한 없는 게 아니고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무시할수는 없는 그 '권장'이라는 단어에, 매일매일 근무 시간과 근무 내용을 기록하고 점검해야 한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적게는 서너 항목에서 많게는 대여섯 항목까지 다양한 근무 내용을 작성하다 보면 볼테면 봐라 난 일하고 적을랜다 싶은 심정이 되는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사람 심리가 그러한것인지, 월말이 다가왔는데 권장 근무시간이 다 찼으면 이상하게 의욕이 안 생긴다는 거다. 감정은 아 다 채웠는데 집에서 놀면 안되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가고, 이성은 그러고서 담달에 출근하면 자리가 없어져 있겠지라는 답을 준다. 물론 하루 무단결근했다고 바로 자를만한 회사는 많지는 않겠지만, 원래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라 저런 짓을 한번 하고 나면 다음달 그 다음달에도 같은 짓을 하고 싶을거고, 어쩌다가 일이 몰려서 채 삼분의 이도 지나지 않았는데 근무시간을 다 채워버렸다!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의 처리도 곤란하고..
뭐, 일견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도 사실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하면 비합리적인 구조가 수도 없이 눈에 띄는데, 이걸 혹자는 창발성이라고 하더라.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전체가 만들어진다는 거.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부분을 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고, 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사이의 관계가 있을 거고. 그런 것들을 잘 조율하면서 무리 없이 조직을 키워나갈 수 있으면 훌륭한 경영자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날은 덥고, 한국에는 더 이상 봄이 없는 것 같다.